마들렌 러브 / 예루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 손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이야."

 

"진짜 와줄 줄은 몰랐는데."

 

"부탁을 하는데 안 올 수가 있나."

 

정인의 오랜 친구 A는 제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뭘 시식하면 되는데?"

 

", 이거."

 

정인은 갓 구운 듯한 마들렌을 접시에 정갈히 담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마들렌 접시 옆에는 그윽한 향을 내뿜는 홍차도 곁들여져 있었다.

 

"또 마들렌이네. 특별한 걸 기대해도 돼?"

 

"마음대로."

 

A는 진지한 표정으로 마들렌을 한입 베어물었다. 베어물자마자 A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의미심장했다. 어떻게 보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차원에서 마들렌을 맛보며 미각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미지의 존재로부터 전달받는 것 같기도 했다.

 

A는 오물오물 마들렌을 씹으며 열심히 저작 작용을 했다. 파슬파슬한 빵이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자 순식간에 표정이 온화해졌다. 종종 씹히는 레몬 과육이 그의 미각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맛있어."

 

A는 한입 베어물고 남은 마들렌까지 입에 털어넣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데?

 

"어떻게 만든 거야? 약간 특이한 맛이 나는데."

 

A가 불쑥 고개를 들어 정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인은 어깨만 으쓱할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치사하네. 혼자 알겠다 이건가."

 

부루퉁한 얼굴로 불만을 내뱉으니 정인이 살짝 웃어 보였다. 입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빵 반죽에 칼집을 낸 것처럼 길게 찢어진 그의 눈에 순식간에 그리움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사연이 있구나."

 

정인은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그의 눈만큼은 구구절절하게 저의 사연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마들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아니. 정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내가 가르쳐줄게 하며 정인에게 앞치마를 둘러 주었다. 앞치마 뒤 리본까지 섬세한 손길로 묶어 주던 손길이 아직까지 생생했다.

 

그러고는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찬장에 까치발을 하고는 낑낑거리며 박력분 한 봉지를 꺼냈다. 오늘 아침에 닭장에서 꺼냈다는 달걀 몇 알도 조심스레 품에 안고선 돌아왔다. 정인이 실수로 달걀을 건드리는 바람에 달걀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가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는 정인을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바닥의 달걀 잔해를 처치한 후에야 비로소 마들렌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밀가루를 체에 치고, 달걀을 풀고, 반죽을 열심히 섞었다. 반죽이 얼추 완성되자 그는 정인보고 직접 반죽을 섞어보고 싶지 않냐며 반죽 그릇을 맡기더니 어디선가 한 시럽병 같은 것을 가져왔다.

 

"그게 뭐야?"

 

정인이 손가락으로 병을 가리키며 묻자 그가 병의 뚜껑을 열어 재빨리 알 수 없는 액체를 반죽에 둘렀다. 그리고 그 병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우리 집만의 비밀 재료."

 

"비밀 만드는 거 나빠."

 

정인이 입을 삐쭉 내밀고 말하자 그는 쿡쿡 웃으며 장난치듯 말했다.

 

"정인이 다 크면 알려줄게."

 

"자기도 애면서.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한 살은 엄청나게 큰 차이지."

 

"형이랑 결혼하면 알려줄 거야?"

 

"너랑 내가 무슨 결혼이야. 너 진짜 웃긴다."

 

그는 배를 잡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어댔다. 나 진심인데. 하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눈물까지 훔쳤다.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고 틀에 반죽을 짜넣을 차례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짤주머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만들기만 해? 가르쳐준다며. 나 아직 재료밖에 못 들었어."

 

정곡을 찌르는 정인의 말에 그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맞다... 까먹었어. 다음에 꼭 알려줄게."

 

 

 

그는 오븐에 조심스럽게 반죽을 넣었다. 정인은 오븐 앞에 철썩 달라붙어 부풀어오르는 반죽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오븐에 빵 굽는 거 처음 봐?"

 

정인은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인은 빵을 굽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들렌이 구워지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 반죽에 자아가 존재하는 것처럼 둥글게 반죽이 부풀어오르는 모습은 열 살 꼬맹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안 돼. 눈 나빠져."

 

신빙성이 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는 어른들에게서 오븐 옆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데에는 대개 타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그는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정인에게 그대로 전했다. 정인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물러나는 듯하면서도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올 때까지 오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 됐나 보다."

 

그는 두툼한 장갑을 끼고 오븐 문을 활짝 열었다. 오븐 속에는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마들렌이 완성되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향긋하고 달큼한 냄새가 나서 정인은 저도 모르게 오븐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대며 향을 맡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

 

"엄청 맛있을 거니까 기대해도 돼."

 

 

 

조심조심 오븐에서 마들렌을 꺼내 하나씩 접시에 담았다. 하나하나 예쁜 조개 모양으로 잘 구워질 줄 알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꺼낸 딱 하나가 이상하게 어딘가 뒤틀린 듯한 모양으로 구워져 있었다.

 

"이거 이상해."

 

"그러게. 반죽이 부족했나? 그럼 이건 내가 먹을게."

 

그가 주저하지 않고 입으로 마들렌을 쏙 집어넣자 정인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그렇게 바로 먹어버리면 어떡해.

 

"그럼 어떻게 먹어야 하는데."

 

"먹기 전에 기도도 하구... 달걀 낳아준 닭한테도 인사 한번 해주구... 저기 옆집 밀밭에도 손 한번 흔들어주고 먹는 거야. 그렇게 그냥 먹는 거 아니야. 모든 것에 감사해해야 한다고 했어."

 

금세 울음을 멈추고 또박또박 답하는 정인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는 정인을 한번 깨물어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인아 일루 와 와아앙 하면서 다가가자 정인은 울다가도 꺄르륵 웃으며 도망을 치곤 했다.

 

"잡았다."

 

상술했다시피 어렸을 때의 한 살 차이는 워낙에 큰 것이어서, 정인은 늘 곧바로 따라잡혔다. 온몸을 간지럽히는 그의 손길에 정인은 눈을 찡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인을 겨우 진정시키고 식탁에 마주앉았다. 식탁에는 어제 앞집에서 주신 우유 한 컵씩과 마들렌이 수북이 쌓인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가 식탁에 앉자마자 포크부터 들어올리니 정인이 급격히 엄숙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에이미를 향해 경의를 표하자."

 

그는 정인의 진지한 말투에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에이미가 대체 누구야? 정인이 유치원 여자 친구 이름이야? 경의를 표한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아니. 난 여자 친구 없어. 에이미는 앞집 아주머니가 기르시는 젖소 이름이야. 경의를 표한다는 말은 저번 주에 성당서 첨 들었어."

 

"그래? 왜 하필 에이미야?"

 

"에이미는 그냥 에이미야. 이유 없어. 날 때부터 에이미였대. 내가 에이미한테 들었어."

 

그렇구나 하고 그는 들었던 포크를 내려놓고는 손을 모았다.

 

"우리가 만든 이 마들렌을 위해 노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리고, 밀가루를 만들 수 있게 해준 밀밭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에이미와 이름 모를 닭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이름 모를 닭이 아니라 헨리야."

 

"에이미와 헨리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아멘."

 

짧은 기도가 끝났다. 모태 천주교 신자인 정인과는 다르게 그는 무교인지라 사실 기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어디서 주워 들은 대로 대충 구색만 맞췄는데 정인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정인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포크를 집어 들고 마들렌을 푹 찔렀다. 그리고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오물오물.

 

"맛있어."

 

"누가 만든 건데 당연히 맛있지."

 

"새콤달콤해. 뭘 넣은 거야?"

 

그는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대며 쉬잇 하고는 비밀스럽게 웃었다. 비밀이라고 했잖아.

 

"내가 언젠가 알아내고 말 거야."

 

정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선포했다.

 

 

 

 

 

 

 

비밀 재료를 언젠가 알아내겠다는 정인의 각오는 빈말이 아니었다. 정인은 불쑥불쑥 그의 집 짙은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진 대문을 두드리며 마들렌을 구워 달라고 소리쳤고, 그는 지치지도 않고 매일 대문을 두드리는 정인을 보며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대문을 열어 주었다. 정인은 마들렌을 만들다 그가 잠시 재료를 찾으러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곳저곳 서랍을 뒤지며 비밀 재료를 탐색하고 다녔다.

 

"양정인 너 거기서 뭐해!"

 

"비밀 재료 구출 대작전이야."

 

"유감스럽게도 우리 집 비밀 재료는 정인이에게 구출되기를 원하지 않아."

 

"아니야 그 비밀 재료 씨도 답답할 거야. 내가 꼭 꺼내줄 거야."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비밀 재료 구출 대작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인이 한눈을 판 사이에 그는 어디선가 비밀 재료 병을 꺼내 온 후 재빨리 어딘가에 숨겼고, 정인은 항상 간발의 차이로 그 순간을 놓쳤다.

 

간발의 차이로 그의 움직임을 포착해내지 못한 정인은 비밀 재료를 구출하자고 결심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오늘만큼은 무조건 비밀 재료를 구출해내겠다고 다짐한다. 정인은 앞집 아주머니가 기르시는 푸들 한 마리를 안고 그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계세요?"

 

잠시 후 끼이익 대문 소리와 함께 그가 나타났다. 그는 정인의 품에 안긴 푸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인아 안... , 이건 아주머니께서 기르시는 푸들이잖아. 정말 귀엽다."

 

"젤리라고 해. 젤리한테 인사해줘."

 

"그래 젤리야 안녕. 왜 하필 이름이 젤리야?"

 

"다들 이런 깜장푸들은 초코라고 이름을 지어야 한다길래 나는 이런 때일수록 틀을 깨야 한다고 말씀드렸어. 모두가 초코를 외칠 때 나 혼자 젤리라는 이름을 말씀드렸더니 엄청 좋아하셨다구. 그래서 젤리야."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잘했네."

 

그는 정인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들어가자. 정인은 문턱을 넘었고 초록색 대문은 힘차게 닫혔다.

 

 

 

정인은 젤리를 소중히 안고 그가 마들렌 반죽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정인이가 웬일로 잠잠하지 싶었지만 괜히 가만히 있던 정인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까 봐 정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반죽이 거의 완성되어 비밀 재료를 꺼내야 할 타이밍이 올 때쯤, 정인은 젤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 화장실 갖다 올게."

 

"그래, 잘 갔다 와."

 

사람 좋아하는 젤리는 정인이 저를 놔주자마자 그에게 달려갔다. 같은 개과라 그런지 서로 방방 뛰며 교감하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정인이 거의 사라졌을 때쯤 그는 허리를 숙여 양념통 서랍을 열었다. 서랍을 열어 비밀 재료를 꺼내려 하니 젤리가 그에게 끊임없이 치대며 병을 집지 못하게 방해를 해댔다.

 

"젤리야 이거 좀 꺼내고."

 

 

 

한편, 화장실에 간다던 정인은 부엌을 훔쳐보고 있었다. 정인이 몸소 계획한 셜록 홈즈 뺨치는 트릭이었다.

 

"저기 있다 이거지..."

 

정인은 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일부러 젤리를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가 병을 꺼낼 때쯤 젤리를 풀어놓고 병을 꺼내는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젤리가 잘 방해를 해준 덕에 정인은 손쉽게 비밀 재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꼭 꺼내 주겠어."

 

정인은 자신이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용사라도 된 것처럼 결의를 다졌다.

 

 

 

평소처럼 그는 반죽틀을 완성하고 오븐에 반죽틀을 넣었다. 오븐 시간을 설정하고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정인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봐두었던 양념통 서랍을 열었다. 비밀 재료가 눈앞에 있었다.

 

"흐음... 평범해 보이는데."

 

정인은 도륵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열었다. 열자마자 달짝지근한 향이 정인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건 혹시... 레몬?"

 

정인은 액체 속으로 새끼손가락을 푹 넣고는 꺼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

 

"정인아 뭐 해?"

 

"으악 깜짝이야!"

 

그대로 병을 놓쳤다. 그리고 병은 와장창 소리와 함께 깨져버리고 말았다.

 

"정인아!"

 

"형 미안해... 이게 그러니까... ."

 

정인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을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승민은 깜짝 놀라 바닥의 유리 파편이 가득한 곳을 깡총 뛰어넘어 정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정인의 발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작은 유리 조각이 박힌 것이라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에구... 그러니까 누가 그러래. ?"

 

가볍게 나무라는 듯한 말투에 정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민이 형 미안해... 형이 비밀이라고 했는데 너무 궁금해서 내가 그 재료 몰래 찾아냈어. 찍어 먹어보려고 손가락까지 담갔는데 형이 와서 너무 깜짝 놀라서 그만 깨뜨려 버렸어. 정말 미안해... 이거 다시 살 수는 없는 거야?"

 

"돌아가신 할머님께서 만들어주셨던 거야."

 

승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정인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러면...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거네?"

 

정인의 눈이 그렁그렁해지자 승민은 정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니야 괜찮아. 직접 만들면 되지."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아?"

 

"글쎄. 시도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럼 레시피를 모른다는 소리잖아."

 

"직접 만들면서 찾아내면 되지."

 

"뭐가 그렇게 쉬워."

 

어린애답지 않게 진지한 정인의 말투에 승민은 답지 않게 어린이처럼 굴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 그치만."

 

정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승민은 정인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두 손으로 정인의 두 뺨을 감싸 두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정인의 두 눈은 눈물로 방울방울 얼룩져 있었다. 터질 듯 말 듯 그렁그렁한 눈이,

 

"정인이만 괜찮으면 돼."

 

따뜻한 한마디에 톡 하고 터져 버렸다.

 

뺨을 쥐고 있던 승민의 손가락에 눈물이 닿아 오니 그는 정인의 눈물을 가볍게 닦아 주었다.

 

"사람이라면 가끔씩 실수를 하게 되는 날이 있어. 실수는 실수일 뿐이니까,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세상에 돌이킬 수 있는 일은 없다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면 최악의 결과만큼은 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정인이는 반성하고, 마음 편하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되는 거야.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지? 형 속이고 형 걱정시키게 만들지 않을 거지?"

 

승민은 '형 걱정시키게'에 힘을 주어 방점을 찍듯 말했지만 정인이 요지를 제대로 알아들었을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정인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러 시련에도 불구하고 정인은 비밀 재료를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둘은 비밀 재료의 레시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을 크게 벌리지 않기 위해 마을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비밀 재료를 만드려고 했지만 그 시도가 몇 년 동안 난항을 겪자 둘은 마침내 직접 다른 마을로 레몬을 사러 가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둘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정인은 창고 어딘가에서 썩어 가던 먼지가 가득한 배낭을 하나 꺼내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최대한 멀리 뻗은 채 탈탈 털었다. 뿜어져 나오는 먼지에 정인은 켈록거리더니 삼 분 동안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했다.

 

배낭을 열어 하루 동안 먹을 간식거리를 차곡차곡 넣었다. 이건 우리 집에 있던 초콜릿, 이건 어디선가 받아 온 애플파이. 생수도 넉넉하게 챙기고, 힘들게 모아 놓았던 용돈도 조금 덜어 안주머니에 잘 숨겨 두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집을 나갈 채비를 하고 평소처럼 초록색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승민 역시 멀끔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승민은 배낭이 아니라 커다란 크로스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면서도 단정한 그의 옷차림은 순한 눈매와 잘 어울려서 안정감을 주었다.

 

둘은 한참을 걷다가 행적이 드문 곳에서 지나가는 마차를 빌려 탔다. 원래는 조금 먼 길이어도 그냥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조그마한 남자애 둘이 인적 드문 곳을 걸어가는 것이 불안해 보이셨는지 한 할아버지께서 마차를 태워 주셨다. 승민은 어깨를 구겨 넣으며 마차에 탔고, 정인은 가뿐히 마차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지금 서쪽으로 가는 것 맞냐, 시장에서 무엇을 살 거냐부터 요즘 좋아하는 건 뭐냐, 우리 손주는 말인데까지. 소소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벌써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길래 둘은 할아버지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원래는 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천천히 시장까지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친절에 일찍 도착해 버린 둘은 시장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정인아 뭐 먹고 싶어?"

 

"... 아무거나 상관없어."

 

정인이 웃으며 말하자 승민은 저 멀리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맛이 있을지 어떻게 아냐 물으니 승민은 감이 온다며 무작정 정인을 끌고 가게로 향했다.

 

승민은 익숙한 손길로 메뉴를 주문했다. 곧 리코타치즈가 뿌려진 샐러드와 김이 나는 수프 그릇이 둘 앞에 놓였다. 샐러드는 정말 맛있었지만 양배추를 좋아하지 않는 정인은 샐러드에서 보랏빛이 나는 양배추를 하나하나 빼내고 먹었다. 승민은 그런 정인을 보며 살짝 핀잔을 주기도 했으나 정인은 끄떡없었다. 매일 들어 오던 소리인데 승민이 한 번 말한다고 달라질 리가.

 

그 뒤로 로제 파스타가 나와 둘은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대책 없이 들어간 집치고는 음식이 맛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승민은 이 가게에 다른 누군가와 이미 와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웨이터를 부르는 자연스러운 손짓부터 평소보다 메뉴를 고를 때의 신중함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부터 정인은 대강 눈치를 챌 수 있었으나 그냥 모른 척했다. 알아 봤자 좋은 게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무난한 식사를 마치고 레몬을 파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가판대에 늘어놓은 줄지어 놓여 있는 레몬들 중에 싱싱해 보이는 것을 골라 집어 들었다. 승민은 며칠 전 부모님께 배운 가격 흥정하는 법으로 레몬을 원래 가격의 70퍼센트 정도로 구입할 수 있었다. 멀끔한 외모에 청산유수 말솜씨에다가 애교까지 곁들여지니 남녀노소 값을 깎아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정인은 자신의 앞에서 보이는 듬직한 모습과는 다르게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승민의 모습을 목도하고 약간은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즐거운 시장 구경을 마치고 둘은 손을 꽉 쥔 채 집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어느덧 어스름하게 노을이 지는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꽉 맞잡은 손은 조금씩 축축해져 갔지만 그 누구도 먼저 놓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앞뒤로 손을 가볍게 흔들며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을 맞는 것. 앞에는 어설프게 포장된 도로와 길가에 피어 있는 자그마한 들꽃을 조심성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는 것. 세상이 아름답고 완벽하게만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비밀 재료든 뭐든 훌훌 털어버리고 오롯이 승민과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마음이 무겁다고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항상 레몬청이 마음에 걸렸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할머님의 유품인데, 그걸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가 냅다 깨트려 버렸으니. 승민은 그때 정인에게 화를 낼 기미조차 내비치지 않았지. 내색 안 했지만 속이 타들어갔을 생각을 하니 정인은 잘 웃다가도 문득 가슴이 꽉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속으로 죄책감이 들다가도 저를 보며 활짝 웃는 승민의 모습을 보면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괜찮은 거겠지. 그런 거겠지. 막연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승민의 장난에 미소로 대응하는 것, 그것이 정인의 최선이었다.

 

 

 

 

 

 

 

둘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나란히 섰다. 정인은 혼자서 앞치마 끈을 묶을 수 있을 만큼 훌쩍 자라 있었지만 정인이 스스로 앞치마 끈을 묶으려 하면 승민은 꼭 정인의 손에 들린 끈을 빼내어 곱게 묶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정인은 왜인지 얼굴이 달아올라 괜한 헛기침을 하곤 했다.

 

평소 하던 그대로, 박력분을 꺼내 반죽을 만들었다. 정인은 전에는 승민이 거품기를 들고 열심히 반죽을 섞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제 손으로 반죽을 섞었다.

 

", 정인이 운동 좀 했어?"

 

"뭐래."

 

정인은 승민의 농담에 퉁명스럽게 답하며 웃었다. 대답을 듣는 승민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 이제서야 마들렌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 아니야?"

 

"? 그런가?"

 

". 그때 형이 마들렌 만드는 방법 알려준다고 해놓고 맨날 말 없이 만들기만 했잖아."

 

승민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그러네. 미안."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지."

 

 

 

 

 

승민은 며칠 전에 직접 만든 레몬청을 반죽에 넣고 오븐에 반죽틀을 넣었다.

 

"정인아 일루 와봐."

 

"또 왜."

 

"너 어렸을 때 이거 좋아했잖아."

 

승민은 초승달처럼 접힌 눈을 하고선 오븐을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븐 유리창 너머로 서서히 부풀어오르는 마들렌이 보였다. 승민이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형, 그게 언제 적 얘기야."

 

"형 눈에는 아직 정인이는 애긴데."

 

"무슨 소리야, 이렇게 큰 애기가 어딨어."

 

"그래요 아강아."

 

정인이 '아강이'라는 단어를 듣고 고통스러워 할 때쯤 마들렌이 다 구워졌길래 승민은 조심스레 마들렌을 꺼냈다. 정인은 컵에 우유를 따랐고 승민은 보기 좋게 플레이팅을 해 둘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마들렌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이미와 헨리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정인은 승민의 기도를 듣고는 포크를 들어올리다 말고 멈췄다.

 

"그거... 기억하고 있는 거야?"

 

". 정인이가 한 말이면 당연히 전부 기억하고 있지."

 

"그건 좀 무서운데."

 

"난 정인이에 대해서라면 다 알지."

 

"뭐래."

 

이게 그들의 티키타카 방식이었다.

 

 

 

 

정인은 경직된 얼굴로 마들렌을 포크로 찔렀다. 마들렌을 입에 넣으려 입을 열었는데, 승민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정인아, 마들렌 하나 먹으면서 왜 그래. 긴장돼?"

 

"..."

 

"형은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마음 놓고 먹어. 괜찮아."

 

정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마들렌을 한입에 쏙 넣었다. 신중하게 입을 오물거리며 맛을 음미했다.

 

"... 다른데."

 

"다르다고?"

 

승민도 마들렌을 한입 베어물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게. 다르네. 뭐가 문젤까?"

 

"..."

 

"평소보다 더 단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정인이가 너무 좋았던 나머지 설탕을 너무 많이 넣은 게 문제였을까?"

 

"..."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저가 미웠다. 동시에 승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쿡쿡 찔러 왔다.

 

정인이 대답 없이 앞에 놓인 마들렌 접시만 멍하니 바라보자 승민이 정인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정인아, 울어?"

 

"아니거든."

 

"근데 왜 말이 없어."

 

"..."

 

"형은 진짜 괜찮은데. 이 마들렌도 맛있고 좋잖아."

 

"..."

 

"?"

 

"..."

 

"괜찮다니까? 형 진짜진짜루 괜찮아. 형은 정인이가 해주는 거면 다 좋아해.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마들렌이든 포슬포슬한 마들렌이든 레몬을 넣든 딸기를 넣든, 아 이건 좀 그런가? 어쨌든 정인이가 뭘 하든 형은 다 좋아. 정말이야."

 

"...."

 

"속상해하지 마. 살면서 한 번 정도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원래 사람은 실수를 겪으며 성장하는 거랬어. 괜찮아. 괜찮아."

 

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인에게 다가가서 정인을 꼭 껴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승민의 품은 따뜻했다.

 

 

 

 

 

이후 몇 번을 더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 맛의 비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레몬청에 설탕을 많이 넣어도 보고, 적게 넣어도 보고, 레몬 시럽을 넣어도 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그때의 그 마들렌 맛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정인은 이제 애가 탄다기보다는 체념의 감정이 더 앞서게 되었다. 이제 더 해봤자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딴에선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 매일같이 초록 대문을 두드리던 정인의 발걸음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틀을 빼먹는 건 기본이었고, 가끔은 일주일 후에 불쑥 승민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승민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반갑다는 얼굴로 꼬리를 흔들어대는 강아지처럼 대문을 열자마자 정인을 꼭 안아주며 기뻐했다.

 

승민이 사라진 건 그때쯤이었다.

 

 

 

 

 

 

 

"? 이사를 갔다고요?"

 

"그렇다니깐. 문 좀 그만 두드리렴. 너만 오면 우리 집 강아지가 계속 짖어. 지금 짖는 거 들리니? 저번부터 계속 오던데."

 

"죄송합니다..."

 

매정하게 대문이 닫혔다. 정인은 굳게 닫힌 대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쩐지. 저번 주에 왔을 때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더라니. 정인은 그저 승민이 바쁜 일이 있어서 나갔나 보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사를 갔다니. 나한테 말도 없이.

 

"뭐 하는 건데..."

 

정인은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하고서 터덜터덜 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뭣해서 무작정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정인은 내딛는 걸음마다 승민의 생각을 담았다. 한 걸음.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 두 걸음. 왜 이사를 간 거지? 세 걸음. 우린 그런 걸 말해줄 만큼의 사이가 아니었나?

 

정인은 생각하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진짜 내가 그 정도였냐고."

 

나만 좋았던 거냐고. 나만 재밌고 즐거웠던 거야?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인데, 그 정도도 말해줄 수 없었던 건가. 괜히 사람 걱정되게 왜 말을 안 하는데. 진짜 너무하다.

 

그렇게 승민과의 추억은 여기서 끝이 났다. 이런 엔딩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후로 정인은 끝까지 마들렌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했다. 꼭 그 맛이 나는 레몬청과 마들렌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마들렌을 구웠다. 앞집 아주머니까지 정인이 계란을 아주 거덜을 내겠다면 허를 내두르실 정도였다. 정인은 마들렌 만들기가 인생 목표인 것처럼 본격적으로 제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제과를 공부하고 학교를 졸업했다. 정인은 집 근처에 조그마한 빵집을 차렸다. 주력 메뉴는 역시나 마들렌이었다. 온갖 재료로 시험을 해봤던지라 가지각색의 마들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는 빵집을 차린 목적이 뭐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나는 빵집을 운영하므로 마들렌을 만들고, 마들렌을 만들기 위해 빵집이 존재한다. 내가 원하던 것이 뭐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들렌 만들기는 정인에게 관성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매일 아침 일어나 레몬청의 비율을 조절하고 마들렌 한 판을 구워 내는 것이 정인의 당연한 하루 일과였다.

 

그래서 역시나 오늘도 친구를 불러 마들렌을 시식해보게 한 것이다. 오늘의 마들렌에는 설탕을 전보다 꽤 많이 넣었다. 거기다가 레몬청에는 탄산수도 아주 조금 넣었고. 전보다 조금 더 그때의 맛과 비슷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착각은 아니겠지.

 

한참 어렸을 때 맛봤던 음식의 맛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인의 미각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좋은 편이었지만 워낙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들렌의 기억이 그때 당시의 맛과 똑같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들렌을 굽고 또 굽고. 맛보고 또 맛보고.

 

그래도 단골 손님만큼은 마들렌의 맛 변화를 정확하게 알아채더라. 저번에 한 학생이 나보고 마들렌에서 갑자기 씁쓸한 맛이 난다고 언질을 준 적이 있었지. 시식 코너에 둔 마들렌을 맛보고 평소보다 더 맛있다며 마들렌을 몇 개 사가신 아주머니도 계셨고. 그분들이 알아채시면 됐다. 난 그냥 평소대로 비율에 미세한 변화를 주며 마들렌을 굽기만 하면 된다.

 

 

 

 

 

***

 

 

 

 

 

딸랑.

 

"어서 오세요."

 

정인은 막 식힌 식빵을 포장하며 손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인사부터 했다. 빵끈으로 예쁘게 포장을 마치고 얼굴을 확 드니 집게와 쟁반을 들어올리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정인은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다. 어라, 그대로네. 이번에는 더 오래 감았다가 눈을 다시 떴다. ... 왜 그대로지.

 

김승민이 내 가게에 왔다. 갈색 떡볶이코트를 입고, 단정하게 덮은 흑발을 한 채. 어렸을 때 티셔츠와 앞치마 입은 모습만 주로 보다가 이런 옷을 입으니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승민은 카운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빵을 골랐다. 시식 코너에 놓인 작게 잘라진 마들렌을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피자빵과 식빵, 애플파이를 쟁반에 담아 카운터에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이,

 

"잘 지냈어?"

 

"......"

 

왜 이렇게 태연한 건데.

 

"네가 만든 마들렌 먹어 봤는데 맛있더라."

 

"......"

 

"여기 혹시 지인 할인은 안 되나?"

 

"......"

 

"정인아 화났어?"

 

"말이라고 하는 소린가."

 

정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승민은 아하하 웃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

 

"... 그건 비밀인데."

 

"그런 게 어딨는데."

 

"여기 있지."

 

"우리가 고작 그런 사이밖에 안 되는 거였어?"

 

승민은 말 없이 정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때처럼 승민의 눈에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나는 그냥..."

 

둘의 말이 겹쳤다. 정인도 승민도 말을 하다가 멈춰 정적이 흘렀다.

 

"이만사천 원이야."

 

"잊어주라."

 

승민은 돈을 건네며 말했다.

 

"?"

 

정인은 귀를 의심했다. 잊어 달라니,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지?

 

"잊어줬으면 좋겠어. 잘 지내나 보러 온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마들렌 먹어 봤는데, 너무 달더라. 설탕은 조금 줄여도 될 것 같아."

 

"?"

 

"고마웠어."

 

"아니 잠깐만."

 

승민은 빵을 집어 들고 가게를 나갔다. 정인이 카운터에서 나가 승민을 붙잡아보려고 했지만 승민을 따라 나가려던 찰나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서 가게를 나갈 수가 없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오늘 마들렌은 왜 이렇게 맛이 없지? 이상하네. 뭐 다른 거라도 넣었어?"

 

A가 마들렌을 집어들고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 설탕을 3분의 1로 줄였으니까 그럴 수 있지."

 

"왜 그랬어? 별론데."

 

"나보고 어쩌라고."

 

갑자기 정인은 주저앉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야야 왜 그러는데...

 

"설탕이 너무 많대... 그만 달달했으면 좋겠대..."

 

"알아듣게 말하라고."

 

"설탕이... 많대..."

 

"아니 좀."

 

아무래도 이런 엔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